그것은 마치 눈앞이 캄캄해지는 현상과도 같은 (Voice Drama)

로오카

(심문실 의자에 앉아서 지급품으로 받은 노트에 스케치를 한다.)




에스

(문 열고 허겁지겁.) 키요하라 죄수! 이 간수, 많이 늦었나요?! 어제 케이크를 너무 먹었더니 혈당 스파이크가 와서··· (우왕좌왕 차 타서 너에게 내밀어.) 죄송해요!!




로오카

아 깜짝아. (들고 있던 연필 삐끗.) 뭐야 너? 늦었으면 조용히 들어오기라도 하든가, 이거 다시 그려야 되잖아. 대체 뭔 케이크를 얼마나 먹었길래···. (튀어나온 선을 지우개로 살살 다듬고, 차를 힐끗 본다.) 오.




에스

죄송해요~! 한··· 두 판 정도··· 앗! 죄수 여러분이랑 같이 먹었으니까요!! (손 휘적거리다 박수 치기.) 키요하라 죄수도 케이크 드실래요? 정말 맛있는 딸기 쇼트케이크니까요! (네 반응에 히죽.) 차와도 아주 잘 어울린답니다!




로오카

두 판?! 뭔데 그거? 케이크··· 싫어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딱히. 이거 그려야 되거든. (다시 슥슥 스케치를 하기 시작···.)




에스

앗! 그, 그렇군요···. (자신의 앞에만 케이크 놓고 차 홀짝.) 키요하라 죄수, 시간이 없는데 그건 이따 마저 그리고, 지금은 이 간수에게 집중해 주시면 안 될까요! 심문해야 하니까요!




로오카

이따 마저? 그런 건 없어. 심문인가 뭔가, 그냥 대답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거랑 이거랑 동시에 하면 되잖아.




에스

하지만 키요하라 죄수는 그것에 집중해서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단 말이죠! 이 간수, 무시당하면 매우 슬플 것 같아요···. (시무룩.)




로오카

뭐야? (슥 보고 다시 그림 그리기 시작.) 의외로 캐릭터 파악이 빠르네. 그래도, 제대로 대답하고 안 하고는 물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 아니야?




에스

헉. 키요하라 죄수에게 칭찬을 들은 걸까요?! 그래도 이 간수의 직감은 꽤나 쓸만하거든요~···. (다시 차 한 모금.) 그럼 키요하라 죄수, 자기소개 부탁해요!




로오카

아, 자기소개 말이지. 음. 귀찮은데. 키요하라 로오카다. 이 정도면 됐지? (손을 계속 움직이다가.) 아, 이 컷 마음에 든다.




에스

와, 완전 깔끔한 자기소개네요···. 나이라든가 직업은 없나요? (네 노트 빠안.)




로오카

(당신의 질문을 듣지 못한 듯이.) 아, 혹시 내 만화에 관심 있어? 이건 아카시아의 3분이라는 내 대표작의 후속작인데. 아카시아의 3분이 무슨 내용이냐면, (품에서 작고 낡은 노트를 꺼내 펼쳐 보며.) 그래, 일단 이곳은 아이디 케이라는 세력과 디 아이에스라는 세력이 대립하는 세계관이야. 두 세력은 전투형 안드로이드를 보급하여 서로 싸우지. 그리고 아카시아라는 주인공은 아이디 케이 세력에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였어.




에스

(네 말에 눈만 끔뻑끔뻑···) 키, 키요하라 죄수! 확실히 만화 이야기라든가, 흥미롭지만 이 간수를 전혀 못 알아들어서요!! ···윽. 제 말이 들리지 않는 건가요···?




로오카

아무튼, 아카시아는 아이디 케이 쪽의 명령을 따르면서 살아갔지. 그런데 말이지, 문제가 있었어. ···아? 아니 들리긴 들려. 내가 귀가 먹지는 않았거든. 아까 뭔 질문 했더라?




에스

웃. 역시 이 간수의 안목이 맞잖아요. 만화 이야기만 하고··· 절대 재미 없었다, 라는 건 아니지만! 키요하라 죄수는 지금 심문하러 오신 건데도요! ···나이라거나, 직업은 안 가르쳐 주시나요?




로오카

아 나이? 직업? 그러네. 귀찮은데··· 32살이고 만화가다, 됐어? 아무튼 그래서···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돌연 기억 장치에 오류가 생겨버린 거지.




에스

32살에 만화가! 으, 으음~ 그렇군요! 키요하라 죄수의 만화는 흥행에 성공했나요? 그런 설정이라면 충분히···. (솔직히 잘 안 들었지만.)




로오카

그래서 말인데, 쟤는 버려지고 말았어. 그렇게 이곳저곳 떠돌다가··· 우연히 디 아이에스, 그러니까 적대 세력 소속의 타쿠미라는 인간을 만나게 돼. 둘이 파트너가 되어 같이 살아가는 얘기야. 되게 이상하지 않니? 아카시아 입장에서 디 아이에스는 평생토록 적이라고 생각했던 집단인데, 그런 세력의 사람에게 구해진 거니까 말이야. 아 흥행? 흥행하긴 했지. 내 대표작이니까. 애니화도 됐고 인기도 많은 편인 걸. 그래서 지금 내가 외전을 그리고 있는 거 아니겠어?




에스

(멍하니 너 바라보다···) 아, 아! 그렇군요! (차 한 모금.) 유명 만화가였군요! 그럼 키요하라 죄수는 누굴 죽이셨나요?




로오카

뭐야? 음, 글쎄? 난 잘 모르겠네. (계속해서 스케치를 하면서 건성건성 대답.) 난 만화 말고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어서 말이야. 애당초 주변 사람을 죽일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지.




에스

하지만 감옥은 키요하라 죄수가 살인을 저질러 왔다고 판단했는걸요? 정말 기억이 없는 걸까요? 어떻게, 무엇으로, 왜 같은 건 기억 안 나시는 걸까요?




로오카

뭐 죽였다고 하면 죽인 거겠지? 딱히 죄가 없다면서 반박할 생각은 없어. 귀찮기도 하고. 그냥 기억이 없는 것뿐이야. 진짜 아무것도 기억 안 나는데. 뭐 죽일 만한 사람이랑 죽일 시간이 있어야지 죽이지. 난 마감하기에도 바쁜데 시간이 어딨어.




에스

기억이 없는 죄수 여러분이 많네요···. 이러면 재단이 흐트러지는데, 곤란하네요. ···그러면 이곳의 첫인상은 어땠죠?!




로오카

첫인상? 글쎄다. 별 생각 없었는데? 그냥 어. 감옥이네. 신기하게 생겼네. 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에스

윽. 키요하라 죄수는 정말 만화 말곤 관심이 없네요···. 키요하라 죄수가 어떻게 살인을 저지른 건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아요! 뭔가, 기억나는 거라도 없나요? 만화 말고 사람이라든가~




로오카

기억나는 거? 사람? 음··· 글쎄. 친동생이랑 꽤나 친했는데. 걔 말고는 딱히 기억 안 나. 친구도 안 만들었고.




에스

친동생···.




[ 심문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




에스

마, 만화 이야기밖에 안 했는데 끝이라니! 어쩔 수 없네요···. 지금부터 키요하라 죄수의 죄를 판결할 예정입니다! 두렵거나 무서운 건 절대 아니니 안심해 주세요! 준비되셨나요?




로오카

뭔데 그게? 뭐 딱히 상관없지만.




에스

그럼··· 죄수번호 8번 키요하라 로오카, 네 죄를 노래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