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마치 외부 잡음을 차단하는 기술과도 같은 (Voice Drama)

로오카

(저번과 같이, 심문실에 앉아 스케치를 하며.)




에스

안녕하세요, 키요하라 죄수! 이번에도 스케치를 하고 있네요. 키요하라 죄수는 이 간수가 없는 동안 잘 지냈나요?




로오카

어··· 아 맞아. 너 없었다고 했지. 뭐 나야 평소랑 똑같지. 그냥 만화만 계속 그리니까?




에스

잘 지냈군요, 다행이에요! 그럼 키요하라 죄수는 1심 이후 변화가 있을까요?




로오카

음··· 변화? 글쎄다. 잘 모르겠네. 그냥 뭔가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거? 뭐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에스

키요하라 죄수도 환청을 피해 갈 수 없는 모양이네요. 그럼 키요하라 죄수, 죄에 대해 뭐가 떠오르는 게 있나요?




로오카

음··· 글쎄? 내가 누구를 진짜 죽였나? 애초에 죽인다는 건,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거잖아? 왜 죽이는 건지, 어떻게 죽일지, 언제 죽일지가 필요하니까. 나는 만화 말고는 관심이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죽일 이유도 없고 말이야.




에스

당신은 사람을 죽였답니다. 감옥이 실수할 리 없어요. 이곳은 되게 깐깐한 곳이거든요. ···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건가요? 무언가 실마리라도 안 보이나요?




로오카

뭐야? 첫 심문부터 되게 집요하게 물어보네. 아, 첫 심문이 아닌 건가? 아 맞네. 1심 이후라고 했었지. 어쨌든··· 진짜 기억이 안 나는데. (스케치를 하던 손을 멈추고, 옆에 놓인 작은 노트를 들고 펼쳐 본다.) 음, 뭐 아무것도 없는데?




에스

엣. 적어도 몇 번째 심문인지는 기억해 달라고요~! 그럼 키요하라 죄수의 주변 인물··· 그 친동생에 대해서 들을 수 있을까요?




로오카

그래. 음, 친동생에 대해서? 내 친동생은 이름이··· 키요하라 무즈카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뭐랄까, 가족이면서 친구 같은 애야. 아카시아의 3분이라고, 내 대표작이 있는데. 그거, 무즈카랑 나를 조금 참고해서 만들었어.




에스

키요하라 무즈카··· 가족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라, 멋지네요! 어떻게 참고한 거죠?




로오카

무즈카랑 내가 아카시아의 모티브라고 해야 하나. 나랑 닮은 점도 있고, 무즈카랑 닮은 점도 있었어. 딱 그 정도야. 사이가 좋았으니까 가능한 거지. 요즘은 좀 서먹하긴 해도.




에스

그렇군요! 어떤 게 닮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 서먹해졌다고요? 왜요?




로오카

성격이라거나, 얼굴이라거나, 그런 건 무즈카를 참고한 것 같아. 음? 글쎄다. 잠시만. 서먹해졌는데··· 왜 서먹해졌더라? 잘 모르겠네?




에스

그것도 기억나지 않으시는 건가요···. 키요하라 죄수에게 무즈카는 소중한 존재였나요?




로오카

그렇지 뭐. 소중한 동생이니까 얘기한 거 아니겠어? 난 친구도 없고 가족도 걔밖에 없는데, 무즈카가 소중하지 않으면 소중한 게 딱히 없는 거지. ···근데 진짜로, 왜 서먹해졌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해. 막 사이가 엄청 틀어진 건 아니었는데. 내가 만화 그리면서 바빠져서 그런 걸 수도. 무즈카도 밴드에서 키보드로 활동하고 있었으니까.




에스

키요하라 죄수는 정말 청렴결백한 사람이네요. 키요하라 죄수가 기억하는 것이 없으니··· 오, 키보드라! 서먹해진 이유··· 두 사람 다 바빴나요?




로오카

바빴지. 그래서 서먹해진 게 아닐까? 내 생각엔 그래. 동생을 물론 아끼긴 아끼지. 근데 나도 밥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까 방에서 만화 그려야 하고. 동생은 공연하겠다고 항상 밖에 다니니까.




에스

그렇군요. 이번에도 키요하라 죄수는 수확이 없네요. 슬프게도··· 이러면 재단이 흐트러지는데. 정말 사람을 죽이지 않은··· 정말 죽이지 않았나요? 잘 생각해 보세요.




로오카

음··· 진짜 내가 누굴 죽였다고? 집 안에서 만화만 그리니까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무즈카밖에 없는데. 근데 내가 무즈카를 죽일 이유가 하나도 없잖아? 동기가 없다고. 동기가. 걔가 없으면 좋아지는 점이 단 하나도 없어. 나쁜 부분밖에 없다고.




에스

그렇다면 키요하라 죄수는 무즈카를 죽인 게 아닐까요? 동기가 없다고 해도··· 애초에 살인은 그리 큰 동기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로오카

그런가? 내가 진짜 그랬다고? 근데 뭐, 큰 동기가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의 이유 같은 건 있을 거 아냐. 걔가 없으면 난 대화를 나눌 사람조차 없는데 뭣하러?




에스

그거야 이 간수는 모르죠! 그렇지만 키요하라 죄수가 죽일 사람이 그 사람 밖에 없다면, 한 번쯤은 의심해도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키요하라 죄수가 그 사람을 죽여놓고 잊고 있는 걸 수도 있어요.




로오카

뭐, 그건 그렇네. 내가 진짜로 그랬다고? 흠. 이유도 뭣도 잘 모르겠지만 잊고 있다는 거라면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종이를 계속 뒤적거린다.) 무즈카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볼 방법은 없는 거야? 여기, 좀 이상한 공간 같았는데. 볼 수 있다면 더 빠르게 알아낼 수 있지 않나?




에스

볼 수 없어요! 그래서 이 간수도 이리 고생하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 심문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




에스

2심이 끝나가네요. 키요하라 죄수, 무언가 할 말이 있나요?




로오카

음, 하긴 맞네. 글쎄. 딱히 할 말 없는데.




에스

후후. 그럼 죄수번호 008 키요하라 로오카, 네 죄를 노래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