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네시아 ─ 무엇도 될 수 없었던 자의 회고록.

─ 루트A: 功과 空, 눈치 채면 그곳에는 이미 아무것도 없었다.



오르골을 보는 걸 싫어하지 않아요. 뚝뚝 끊기는 음악에 맞춰 똑같은 자리를 도는 모형 발레리나. 가만히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게 돼요. 영영 그 자리에 앉아 멍을 때리고 싶다고.



──사실은 잊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마음 한구석에 남은 상념을요. 제가 옳지 않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언제나 무언가가 되기를 원했어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에는 상냥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상냥한 사람이 되는 건 너무나도 어려웠어요. 그래서 평범한 사람이라도 되기를 원했어요. 평범한 것도 사실 어려운 거더라고요.



제가 우스운 사람이 아니라고 증명하고 싶었어요. 그 아이들을 부정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그 아이들의 말대로 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잘만 하면 그들을 친구로 만들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괜히 말도 한 번 붙여보고, 웃어보고, 그들이 뭘 좋아하는지 관찰했어요.



지금 돌이켜 보니, 어떤 시도를 해도 그 아이들에겐 제가 괴물일 뿐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제가 무슨 선택을 하는 게 옳았던 걸까요. 가족들이 저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고 말한 게 문제였을까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차라리 쓰레기가 되려고 한 게 문제였을까요. 제가 아니라 저를 이렇게 만든 이들의 잘못인 거라고 생각한 게 문제였을까요. 모든 이들을 부정하고 싶다고 여긴 게 문제였을까요. 사랑이 존재할 리 없다는 믿음이 문제였을까요.



그저 무엇이라도 되고 싶었어요. 진심으로 원했어요. 상냥한 사람이, 그걸 바라는 것이 잘못이라면 누군가의 친구가, 그걸 바라는 것이 잘못이라면 우습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걸 바라는 것이 잘못이라면 평범한 사람이라도, 그걸 바라는 것이 잘못이라면 우습고 못난 사람이라도, 그걸 바라는 것이 잘못이라면 쓰레기라도 되고 싶었어요. 쓰레기라도, 재앙이라도, 괴물이라도, 마녀라도, 괴기 현상이라도, 80억 명 모두의 적이라도, 80억 명 모두가,



──되고 싶었어요.

그걸 바라는 것까지 잘못이라면, 저는 대체 언제쯤 무언가가 될 수 있나요?



모두가 부러웠어요. 모두가 부러워. 당신들이 되고 싶었어요. 당신들이. 거기 있는 당신들이. 그 옆에 있는 당신들이. 그 옆에 있는 당신들이. 이웃인 당신들이. 친구인 당신들이. 학생인 당신들이. 연인 사이인 당신들이. 서로에게 이별을 고하는 당신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당신들이. 다투고 있는 당신들이. 출근길 지하철에 우글우글 모여 있는 당신들이. 회사 동료인 당신들이. 한 사람의 어머니인 당신들이. 아버지인 당신들이. 딸인 당신들이. 아들인 당신들이. 형제 자매가 있는 당신들이. 외동인 당신들이. 다른 나라에 사는 당신들이. 직업을 가진 당신들이. 서로 원수를 진 당신들이. 누군가를 돕는 당신들이. 누군가를 돕지 않는 당신들이. 웃는 당신들이. 화내는 당신들이. 우는 당신들이. 한결같은 당신들이. 이중적인 당신들이. 부조리에 항거하는 당신들이. 소시민적인 당신들이. 가지고 싶은 것을 위해 싸우는 당신들이. 누군가를 지켜주는 당신들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당신들이. 용서받은 당신들이. 용서받지 못한 당신들이. 분명히 여기 존재하는 당신들이. 쓰레기인 당신들이.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부러웠어요. 부럽고, 너무나도 증오스러웠어요. 견딜 수 없을 만큼.



그러네요.

저는, 정말로 잘못 선택한 거군요.

80억 명 모두가, 아니었던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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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로놈 소리가 똑딱똑딱, 흘러가요. 일정하고 기계적인 리듬. 똑딱똑딱, 똑딱똑딱, 줄을 맞추듯이 들려와요. 마치 오르골 소리처럼 느껴져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네요.



저는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간과해온 걸까요. 결국 저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정신이 아득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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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이런 내가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



기억을 잃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그때는 조금 더 주변을 사랑하도록 할게.

사랑 같은 게 존재할 리 없다고 말하지 않을게.

내 새로운 선택이 옳을지는 나도 모르지만, 그렇게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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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망가진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지만.